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케인(인터넷 방송인) (문단 편집) === 수능 연대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대학생 케인.jpg|width=100%]]}}}|| ||<#6441a5> {{{#FFFFFF 대학교에 입학한 케인}}} || 케인하면 수능이라고 할 정도로 수능과 상당히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팬들 사이에선 "11수" 연대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케인이 수능을 치른 횟수로만 따지면 3번([[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06]],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1]],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2]])밖에 치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11년 동안 수능을 3번을 본 것. 2018년 2월에 [[침착맨]]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https://arca.live/b/zilioner/8513916|정사(正史)로 밝힌 사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데, 케인의 항변이 무색하게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차라리 11수를 했다고 하는 게 더 나아 보일 정도로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 [[2000년]] - 현역 고3일 때 수능을 패스. 당시 내신은 좋았지만[* 한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1~2등급을 유지할 정도로 내신이 매우 좋았다.] 모의고사 성적이 320점으로 저조하였다. 물론 케인 스스로도 당시 인천은 너무 공부를 안하는 동네였기 때문에 손쉽게 내신 성적이 잘 나오기는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당시 인천의 학력수준은 서울이나 타도시보다 유독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케인은 고2때 손쉽게 성적이 오르자 자기 스스로를 천재로 여겼다고 한다. 내신에 올인했기 때문에 수능 성적이 안나온다고 스스로를 진단하고, 고3 때 재수를 결심하고 수능을 보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능을 보지 않겠다고 하자 친형한테 피날 때까지 얻어터졌다고 한다. 특히 얼굴을 맞았는지 눈썹이 [[https://vod.twip.kr/clip/BelovedHotSangSeemsGood|짝눈썹]]이라고 한다.[* 케인은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줬다고 한다. 그런데 수능을 안 보겠다고 하니 부모님의 속을 썩여 형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케인은 이 당시 수학, 영어, 과학은 점수가 잘 나왔지만 국어와 케인이 현역이던 6차 교육과정 시기는 문이과 구분없이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모두 필수 응시하였어야 해서 봤던 사회에서 점수를 다 깎아먹었었다고 한다. 당시는 공부할 범위가 매우 많았기에 겉핥기를 잘하는 얕게 파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했었다고 하며, 본인은 그로 인한 [[6차 교육과정]]의 피해자였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허나 결국 이는 본인 스스로 공부에 대한 메타인지와 전략이 부재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후 수능이 선택 과목으로 바뀌면서 사탐을 공부 안해도 되고 핵심 과목만 깊이 있게 잘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렇게 바뀐 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 [[2001년]] - [[포트리스]]에 빠지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1년만 놀겠다고 공언했다. 빠른년생의 1년 마일리지를 이때 쓰겠다는 논리였다고 한다. 그렇게 12월까지 1년간 포트리스 왕폐인이 되어 원없이 포트리스를 즐기며 놀았다. 연말이 되니까 포트리스에 물려서 더이상 하기 싫어졌다고 한다. 수능 패스. * [[2002년]] - 2001년 12월 용인의 군대식 기숙학원의 고2(예비고3) 겨울특강에 들어갔다. 다른 고2 재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반장을 맡게 되었고 이에 책임감을 느껴 열심히 공부했고 종강 때 전체 5등의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겨울특강이 끝나고 2월 같은 학원에서 재수종합반이 시작하자 등록하였고 겨울특강 때 선생님들에게 쌓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어나가려 했으나, 옆자리 짝궁인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자기보다 선생님 질문에 항상 빨리 대답하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학생이 자신에게 공부 방법을 조언하자 이것이 참견으로 느껴지는 등 그 학생의 모든 것이 싫어졌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책을 너무 시끄럽게 넘긴다, 지우개 지우는 소리가 너무 크다, 책상 서랍 여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등 갖은 시비를 걸기 시작했고, 그 학생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강요하였으나, 그 학생은 불편하면 케인이 자리를 옮기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그러자 케인은 경악스럽게도 자율학습 시간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공부하던 짝궁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폭행 가해 시 무조건 퇴원 규정이 있었지만, 선생님에게 울면서 본인의 억울함을 과장해서 읍소했고, 부모님이 학원에 다녀간 후 학원에서 짤리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다른 반으로 반을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학원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미친X, 싸이코패X로 낙인찍히게 되어 모든 학생들이 케인을 피하게 되었고, 이후 외톨이가 되어 밥도 혼자서 먹게 되었다. 게다가 모의고사 성적도 320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머무르자 공부에 의욕을 잃게 되었다. 결국 스스로 학원을 떠나야 겠다고 결심했고, 4월말 사감 선생님을 피해 학원을 탈출했다.[* 침터뷰 영상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부분으로, 당시 채팅창에서는 케인을 옹호하는 여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숙 학원에서 나온 후 공부도 하기 싫고 한달간 멍하게 허송 세월을 보내다가 6월 월드컵이 시작되자 월드컵을 즐겼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자 2002년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수능을 볼 수 없다고 판단, 공부를 포기했다. 대신 건강이 약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탓하며 헬스를 끊어 2002년 하반기 내내 헬스에 매진했다. 수능 패스. * [[2003년|2003]]~[[2004년]] - 2002년 하반기에 열심히 헬스를 해서 건강을 갖추었다고 판단, 2002년 11월 노량진 재수 선행반에 등록하여 2003년 수능 준비를 시작했고,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 얼마 전 신검 결과가 발표, 5월에 상근 입대영장이 발부되었다. 결국 한달여만에 다시 수험생활을 포기했고, 2003년 6월에 입대하여 두 번의 수능 응시를 포기하였다. 수능 패스. * [[2005년]] - 운동하면서 몸을 만들어 6월 제대했다. 공부하기에 남은 기간도 짧아서 완벽한 상태로 수능을 볼 수도 없고, 기껏 운동으로 만든 몸도 아깝고 해서 수능을 포기하고 언제 놀겠냐는 생각으로 연말까지 여자도 만나면서 놀았다. 수능 패스. * [[2006년]] - 헬스에 매진한 결과 몸짱 근육남이 되어 공부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2005년 12월 노량진으로 가서 고시원과 재수종합반(노량진 한샘학원으로 추정)에 들어갔다. 서울대라는 목표를 교대로 하향했다. 선생님이라는 일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 예전에 기숙학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맨 앞 자리를 지정석으로 받았고, 예민한 케인을 담임 선생님이 잘 배려해 주셔서 큰 탈 없이 수험 생활을 이어갔다. 6월 모의고사에서 올 2등급을 받았고, 이정도 페이스면 교대에 가고도 남겠다고 자만했고, 이후 매일 오락실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재수종합반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조퇴증을 끊어주지 않는 담임선생님 덕분에 학원에서 야간자율학습이 끝날때까지 공부해야 했고 1년간 페이스를 잃지 않고 수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름이 되자 에어컨 바람에 예민한 그는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스스로 일요일에 학원에 나와 에어컨에 못을 박아 바람막이를 설치했다. 무단으로 에어컨에 구멍을 뚫었지만 선생님들은 예민한 그를 너그럽게 배려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6월 모의고사 결과로 자만한 탓인지 가을에도 2등급에서 더이상 성적이 오르지 않아 교대도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다. 어쨌거나 첫번째 수능을 보았다. 하지만 3교시에서 [[과민성 방광]]으로 인한 요실금 때문에 오줌을 지리면서[* 정확히는 모의고사와 같이 신경이 예민해지면 요의가 생겨서 집중을 할 수 없자 재수학원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을 했는데 신경이 예민한 여학생들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하며 차라리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가서 요의가 생기면 그냥 싸버리는게 집중하는데 좋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사전 착용과 검증을 하였으나 막상 당일날에는 착용을 잘못해서 새버렸다고 한다.] 멘탈이 무너지고 수능을 말아먹었다.[* 언어 2, 수학 2, 영어 4, 탐구 4등급] [[공주교육대학교|공주교대]]에 떨어졌고 [[광운대학교]] 컴퓨터학과에 합격하였으나, 합격전화를 건 상담원에게 "제가 그딴 대학교 가려고 군대 갔다와서 재수한거 아니거든요?" 라고 말하며 등록을 포기하고 다시 수능 공부를 하기로 했다. 생애 가장 후회되는 일이 이때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2년 아프리카 방송에서 광운대 입결이 상승했다는 기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 [[2007년]] - 서울대병 재발. 수능장에서 오줌을 지린 것은 서울대에 합격하기 위한 액땜이었다고 생각, 목표를 교대에서 서울대로 상향했다. 노량진 단과 스타 강사 수업을 찾아 다니고 독서실에 다녔다. 그렇게 첫 한달 동안 무척 열심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종합반의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나태해지기 시작했고 4월부터 정인오락실에 빠졌고 공부가 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인터넷방송을 알게 되었고, 본인이 해도 잘하겠다고 생각, 공부도 안되고 해서 7월부터 아프리카 방송을 시작하며 전설의 07케인의 역사가 써내려졌다. 당시에는 인터넷 방송에 대한 아무런 규제가 없었기에 폭언, 욕설, 장난전화, 타 BJ 비방 등의 악질 컨텐츠로 인터넷 방송계에서 명성을 날렸다. * [[2008년]] - 서울대를 목표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방송과 공부를 병행했다. 케인TV를 설립했으나 문을 닫고 인터넷 방송에 집중하느라 수능을 포기한다. 수능 패스. * [[2009년|2009]]~[[2010년]] - 다시 수능에 도전, 공부와 방송을 병행했다. 그러나 완벽한 상태로 수능을 볼 수 없어 수능을 포기한다. 수능 패스. * [[2011년]] - 이번에는 정말로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겠다고 다짐, 5년간의 노량진 생활을 청산하고 2월에 부산의 모 시청자네 집에서 월 70만원씩 내고 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예민한 케인은 개구리 소리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게 된다. 개구리 소리를 막기 위해 일주일간 스티로폼 작업을 하여 창문을 막았다. 5월까지는 열심히 했으나 부산 시청자와 갈등을 겪으며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고, 8월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고시원에 들어갔으나 목디스크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2번째 수능을 봤다. 결과는 좋지 않았고, 부모님은 대학 진학 후 편입을 권유했으나, 케인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였다. * [[2012년]] - 전설의 아동복 판매와 재수 시기. 집안의 지원으로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다가 연세대 출신 사장님의 권유로 3번째 수능을 보게 되었다. 서울권 전문대에 합격하여 2013년 입학했다. * [[2013년]] - 전문대에 입학한 후 편입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2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학생회장이 되어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편입에 매진하지 못하게 되었다. * [[2014년]] - [[명지대학교|4년제 수학과]]로 편입에 성공했다. 스타강사를 꿈꾸던 그에게 겸임교수(시간강사)의 권유로 겸임교수가 개업한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갈등이 생겨 학원을 나오게 되었고, 과외교사 활동을 했다. * [[2015년]] - 인터넷 강의 도입을 목적으로 인터넷 방송을 다시 접했는데, 이게 더 재밌어서 방송생활에 전념하며 현재까지 이어짐. 참고로 인터넷 방송인으로 완전히 전향 후 2015년 8월에 처음으로 한 게임 방송이 그 전설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였고, 노인과의 레전드 영상이 2015년 10월 10일자였다. 위의 파란만장한 이력 때문에 방송 중 트위치 기부금 멘트로 위의 이야기가 추측성 날조가 된 케인 연대기가 종종 음성재생된다. 멘트가 길어서 조용히 하라는 말을 종종 하며 본인도 부끄러운지 헛웃음을 짓는 경우가 많다.[* 11수 드립까지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지만, 채팅으로든 도네로든 연의(演義)인 케인 연대기 드립을 기분 나쁠 때 하거나 뇌절을 심하게 하면 케인이 정색하고 쌍욕을 박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현재는 사실상 포기하고 쌍욕까지는 박지 않는 편이지만 대개 정색한다.] 침착맨과의 전화 인터뷰로 정사가 확립된 이후에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케인 연대기에 힘입어 구글에 "아동복"만 쳐도 자동완성으로 "아동복 판매와 재수"가 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